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라타 소총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r3C60dr_EBA)]}}} || || 무라타의 관한 이야기 || 맨 처음 11x60mm탄[* 구경과 길이만 보면 무지막지해 보이겠지만 사실 이렇게 구경이 큰 이유는 '''흑색화약''' 사용탄이어서 이 정도 큰 구경이 아니면 원하는 운동에너지(2,280J)를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(이 정도면 무연화약 기준으로 웬만한 [[6.5mm]] 탄환보다 미묘하게 약하거나 돌격소총인 [[AK-47]]이 쓰는 [[7.62mm#s1.6|7.62×39mm]]와 같은 수준이다.). 무연화약이 전쟁사에 한 획을 그은 발명이라 칭송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. ~~만약 이것이 무연화약을 썼다면 [[.338 Lapua Magnum]]탄 수준의 위력이 나왔을 것이다.~~ 참고로 11×60mm는 [[게베어 1871]]이 사용하는 탄환과 규격 표기가 같지만, 두 탄은 서로 다른 탄이다.]을 쓰는 13년식을 만들고, 좀 더 짧아진 16년식 기병총을 만들었다. 그리고 13년식을 조금 바꾼 18년식을 만든다. 이 총들은 납탄넣고 화약넣은 후 다져줘야하는 [[전장식]] 소총에 비하면 혁신적으로 편리해진 금속탄피 일체형 탄환을 사용하는 [[볼트액션]] 구조의 [[후장식]] 소총이긴 했으나 탄창이 없는 단발식이어서 병사들이 한 발 쏘고 재장전을 해야하는 불편함이 남아있었다. 따라서 1887년에 일본군은 무연화약을 사용한 연발총을 만들기로 하고, 무라타는 1889년에 새로운 22년식 연발총을 제작한다. 22년식은 대부분의 부품이 국산화되었다는 장점이 있지만, 명중률이 나쁘다는 단점이 있다. 게다가 [[르벨 M1886]]와 같은 장전 장치를 사용하였다. 그래서 르벨 소총과 같이 한 발 한 발 튜브탄창에 탄을 밀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 탄을 다 쏴버린 경우 재장전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상당히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. 결국 무라타 소총은 [[아리사카]] 계열인 [[30년식 소총]]으로 대체되었으나, 이후 [[제2차 세계 대전]] 당시에 [[결호작전]]을 위해서 새로 편성된 사단들 중에는 급조된 화승총과 구식 아리사카와 함께 창고 구석에 있던 이 무라타 소총을 지급받은 경우도 있었다. [[고종실록]]에는 일본 공사 [[다케조에 신이치로]]가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에게 무라타 소총 두 정을 진상한 기록이 남아있다.[[https://sillok.history.go.kr/id/wza_12109015_001|#]] 퇴역한 13년식, 18년식은 민간에 사냥용 [[엽총]] 명목으로 산탄총으로 개조되어 방출되기도 했는데,[* 일반적인 무강선 엽총과는 다르게,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[[VPO-208]]같은 엽총처럼 강선이 일부 남아있다. 소총의 규제를 회피하면서 단탄 사용 시 명중률의 저하를 막기 위해서인듯.] 기존의 11×60mmR 탄약을 기반으로 생산한 28, 30, 36게이지 탄약[* 이 탄약들은 완성품이 아닌 [[https://www.gunboards.com/threads/n-p-k-no-30-30-ga-murata-shotgun-shells.338799/|황동 탄피]]가 제공되어 사용자가 직접 탄자와 화약 등을 구해서 핸드로딩을 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. 12.3mm 230그레인 단탄 기준 탄속 280m/s, 588줄의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있다.[[https://littleken.militaryblog.jp/e1061143.html|#]] ]을 사용하는 13식/18식 산탄총 이외에도 KFC(Kawaguchiya Firearms Company)를 포함한 수많은 총기회사와 공방에서 무라타를 본따 제작한 8게이지 대형 산탄부터 소형 7.6mm 산탄[* 7.6x38mmR, 일본에서만 사용되었던 규격이다. 나강 리볼버의 탄약(7.62x38mmR)과 규격이 비슷하나, 호환이 되는지는 불명. [[https://forum.cartridgecollectors.org/t/mysterious-japanese-7-6-mm-shotshell/10532|#]]]까지 폭넓은 구경의 무라타식 산탄총(村田式散弾銃, murata-type shotguns)들이 만들어졌다.[* 이러한 새로 생산된 무라타식 엽총들은 기본적으로 13식 소총과 비슷하나 손잡이와 총열덮개에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체커링이 들어가 있다던가 개머리판의 모양이 다른 등의 차이점들이 있다.[[https://www.gunboards.com/threads/murata-shotguns-16-ga-and-a-small-bore.442657/|#]] [[https://www.kamioka-gun-shop.jp/jis012.html|#]]] 또한, [[조총|타네가시마]]의 몸체에 무라타 산탄총의 총열과 작동부를 이식한 엽총들도 만들어졌다.[[https://www.gunsinternational.com/guns-for-sale-online/shotguns/shotguns---japanese/fascinating-japanese-murata-type-13--tanegashima-.cfm?gun_id=101189052|#]] 이러한 무라타 엽총들은(13/18식 개조형이나 새로 생산된 무라타 형태의 엽총 모두) 공통적으로 흑색화약 황동 탄피만을 사용 가능해 불발률이 높고,[* [[산케베츠 불곰 사건]] 당시 여러 명의 엽사들이 곰을 발견해 사격했으나, 죄다 불발되었고 그나마 발사된 한 발조차 명중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.] 현대에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 탄피의 산탄총 탄약은 따로 개조하지 않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존재한다. 무라타 엽총을 위한 탄피 및 핸드로딩 도구들은 1990년대까지 생산이 되었다고 한다.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한 사냥꾼들의 일화집을 보면 돈 있는 사냥꾼은 미국산 [[윈체스터(총기회사)|윈체스터]]나 유럽산 총기를 사고 가난한 사냥꾼은 무라타 소총을 쓴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.[* 동시대 엽총들과 비교해서 무라타 엽총은 상당히 저렴한 편에 속했다. 1930년 기준으로 30게이지 무라타 엽총의 가격은 19엔이었는데, 영국에서 수입했던 홀랜드&홀랜드 [[더블 배럴 샷건|수평 2연발 엽총]]의 경우 1650엔이었으며, 일본 KFC사의 12게이지 단발 엽총의 가격이 38엔이었다. 당시 평균 노동자의 월급은 약 40~50엔이었다.[[http://www.nambuworld.com/muratashotgunpix.htm|출처]]] 또한 일본의 많은 사냥꾼들도 이 엽총들을 사용했는데, 특히 도호쿠 지방의 사냥꾼들인 [[마타기]]를 소재로 하는 일본 영화에선 타네가시마 조총과 함께 거의 필수요소로 등장한다. 2차 대전 말기엔 일본군이 민간에 풀린 무라타 산탄총까지 징병하여 본토방위대에 투입시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